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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사장의 집행정지신청 기각결정에 대한 어느 변호사의 소회
허허... 쓴 웃음밖에 안나온다.
KBS 정사장을 해임한다는 대통령의 해임처분에 대하여 정사장이 취소소송을 제기하면서 곧바로 취소소송의 판결이 날 때까지 해임처분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신청을 제기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때가 며칠 전이었던가? 그 소식을 듣고 같이 모여 있던 변호사들에게 "취소소송의 판결이 어찌 될지는 몰라도 집행정지는 당연히 되는 것 아냐?"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한 선배 변호사 曰, “우리가 언제부터 법원을 그렇게 신뢰해 왔냐?”라 하지 않는가? 옳고 그름의 모든 것을 법원이 제대로 판별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법적인 쟁송을 만사의 해결기준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취지로.
모름지기 대통령이나 정부기관의 결정과 같은 처분은 나중에 옳고 그름이 판가름 나기 전이라도 일단 효력을 발생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행정소송법 제23조 제2항은 "취소소송이 제기된 경우에 처분등이나 그 집행 또는 절차의 속행으로 인하여 생길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본안이 계속되고 있는 법원은 당사자의 신청 또는 직권에 의하여 처분등의 효력이나 그 집행 또는 절차의 속행의 전부 또는 일부의 정지(이하 "집행정지"라 한다)를 결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취소소송(임시적인 결정을 하는 집행정지사건과 구분하는 의미에서 우리는 이를 통상 ‘본안소송’이라고 부른다)이 진행되는 동안 시간이 지나버리면 나중에 당사자가 제기한 본안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이겨 봤자 소용 없는 상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긴급한 상황에서 임시적으로 처분의 효력을 정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기실 내가 집행정지는 당연한 것처럼 말한 데는 이 같은 법규정상의 근거뿐 아니라 법원이 이제껏 이 같은 집행정지를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대부분 인정해 왔던 법적용의 기준과 관례가 있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내가 아는 모 업체가 여러 사업종류 중 A라는 사업을 하기 위한 등록을 신청하면서 반드시 필요한 서류를 허위로 만들어 제출한 사실이 발각되어 그 A 사업에 관한 등록취소처분을 받아 그 업무를 못하게 되었을 때(물론 다른 여러 종류의 사업은 그대로 할 수 있었다), 딱 보면 허위서류를 제출하여 등록을 받은 것이 확연하게 드러남에도 우선 당사자가 등록취소처분을 다투는 본안소송을 제기하면서 곧바로 등록취소처분의 집행을 정지해 달라는 집행정지를 신청했을 때 신청한 그 다음날 바로 집행정지결정이 났다.
정사장 사건과 비슷한 다른 사건도 마찬가지다.
법 률에 따라 정부의 규제를 받는 모 조합의 조합장이 비위사실로 장관으로부터 해임처분을 받았을 때 역시 본안소송을 걸면서 곧바로 해임처분의 옳고 그름에 관한 판결을 받을 때까지 해임처분의 효력을 정지하여 조합장으로서의 신분을 유지하게 해 달라는 집행정지신청을 하였을 때에도 신청한 지 4-5일도 지나지 않아 집행정지결정을 받은 바 있다. 조합장의 비위사실에 대한 증거가 엄청났을 뿐 아니라 나중에 본안소송의 판결에서 비위사실로 해임이 정당하다는 판결이 났으며 법원에서 형사처벌까지 받을 정도였음에도 말이다.
그 뿐이 아니다. 비록 그리 많지는 않으나 내가 처리했던 집행정지사건 중 집행정지결정이 나지 않았던 것을 나는 아직 기억하지 못한다.
그만큼 행정처분(대통령의 KBS 정사장 해임결정도 행정처분의 일종이다)에 대하여 본안소송으로 다투면서 본안소송의 판결이 날 때까지 그 행정처분의 집행정지를 신청하는 경우, 다투는 이유가 너무도 터무니 없는 경우이거나 “집행정지는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을 때에는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 행정소송법 제23조 제3항에 따라 집행정지를 했을 경우 공공복리에 중대한 위해가 가해질 우려가 있을 경우가 아닌 한 거의 틀림 없이 집행정지결정이 났었고, 그것은 집행정지제도의 취지상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 KBS 정사장의 해임처분에 대한 집행정지신청을 기각한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인가?
신문에 난 소식에 따르면 이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해임 처분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긴급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지 않는다"고 기각사유를 설명했다고 한다. 정말 그런가? 공영방송의 사장이 사장직에서 강제로 쫓겨났는데, 옳고 그름이 판결로 판가름 날 때까지 사장으로서의 지위와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아니면 그 무엇인가? 그리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긴급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아 니 일개 조합의 조합장 해임에 대하여도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해임처분의 집행정지결정을 내 주면서서 한 나라의 대표적인 공영방송 사정의 해임처분에 대하여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정말 설득력이 있는가?
재판부는 또 "현재 제출된 자료로 볼 때 해임한 측(이 대통령)의 행위가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상태"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이것은 법률전문가가 보면 완전히 언어도단이자, 정치적인 수사(rhetoric)일 뿐이다. 집행정지결정이란 행정처분을 한 자가 위법하기 때문에 내 주는 것이 아니다. 행정처분이 위법한 경우 집행정지결정을 내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위법한지 위법하지 않은지 불분명한 경우에도 집행정지결정을 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집행정지제도의 핵심이 바로 이처럼 위법 여부가 불분명하고 앞으로의 본안소송을 통해 확인해 보아야 하는 단계에서 행정처분의 집행이나 효력을 본안소송의 판결이 날 때까지 정지하는 데 있다.
곧, 정사장 해임처분이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재판부의 언급은 해임처분이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 있을 때에만 집행정지를 해 주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이는 집행정지제도의 취지를 완전히 몰각시키는 행위일 뿐 아니라 이제껏 법원이 집행정지신청에 대하여 취해온 일반적인 태도와 관례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일탈행위이다.
왜 법원은 이 같은 어처구니 없는 결정을 하게 되었을까? 우리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정사장 사건의 재판부는 오늘 정말 한 점 양심에 부끄럼이 없을 정도로 독립하여 심판한 것일까? 정말 이 사건에서 해임처분을 받은 자가 정치나 권력적인 문제와 무관한 일개 조합의 조합장이고, 또 이 사건에서 해임처분을 한 자가 정치나 권력적인 문제와 무관한 일상의 업무를 처리한 일개 장관이었더라도, 오늘의 결정처럼 하였을까? 당사자가 부잔지 빈자인지, 세도가인지 힘 없는 민초인지 보지 않고자 헝겊으로 눈을 가린 채 오로지 정의와 형평의 저울추에만 의지한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처럼, 오늘의 법관들은 정말, 정말 이 나라 최고의 권력자와 그 배후의 세력들이 한 당사자임을 고려하지 않는, 권력과 사리에 좌우되지 않는 blind였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왜 앞의 선배 변호사가 그런 말을 했는지 이제서야 그 예지를 이해할 것 같다. 법을 공부하고 법을 가르치고 법으로 먹고 사는 나로서는 요즘 제 길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검찰의 행태에다 오늘 법원의 모습까지 보면서 법에 대한 회의(懷疑)를 품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참 슬픈 날이다.
정말 웃기는 세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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